남대문이 불타다니... 농담인가 했다. 지난해에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의 유적들을 제대로 본 적이 없구나 싶어 가까운 곳을 구경 다니며 소개글을 써왔다. 남대문도 다녀왔는데, 소개의 글을 완성 못해서 미뤄왔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암만 국보 1호, 2호 하는 번호는 중요한 순서가 아니라 그냥...순서일 뿐이라지만 '국보'라는 말은 폼인가 이거 뭐... 툭하면 문화제에 방화질이고, 그런 돌아이의 방화로 국보가 날아가다니 대체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는거냐. 아오..화나화나 남대문의 정면 숭례문의 현판...특이하게 세로로 쓰여있다. 세로인 이유는, 관악산이 화기가 강한데, 그것이 경복궁의 왕에게 해가 될까봐 막기 위해 숭례문의 현판을 세로로 썼다고 한다. (숭례, 두글자가 위아래로 있으면 불을 ..
책을 사러 갔다가 청계천에 들렀습니다. 불빛이 예뻐서 몇장 찍어 보았습니다. 다슬기 + 이발소 표시 = 스프링 = 34억 요리 보고 조리 봐도 34억은 좀... 물에 비친 모습이 보름달 같네요. 청계천의 시작. 지나가던 고등학생들이 사진 찍기을 다 찍을 때 까지 지나가지 않고 기다려 주었습니다. 프레임 안에서.....-_- 작은 물줄기 사이에도 작은 불들을 붙여놨군요. 밤에 안보여서 밟으면 낭패!에 대한 대비도 되고 예쁘기도 하네요. 빛이랑 분수,폭포랑 콤비를 이뤄서 낮이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크게 보려면 사진을 클릭하세요.) 조금 더 가까이... 해와 달이 머리 위에 있듯 빛은 보통 위에 위치하는데, 여기는 다리를 반사판으로 이용해 물 속에서 빛을 쏘고 있네요. 물 속의 조명과 반사..
평일이라 한적하고 좋구나! 며칠 전에 청계천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습니다. 약간 일찍 나와 넋 놓고 청계천을 배회했습니다. 왔다갔다 하다가 광통교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상한게 보이나요? 네, 뒤집혀있습니다. 사진을 뒤집은게 아닙니다. 그 아래에 있는 교대석도 뒤집혀 있어서 '원래 무늬가 뒤집힌건가? 어떤 의미가 있는건가?' 하고 봤더니 옆에 몇개는 또 머리가 위쪽으로 향하고 있더군요. 순간 '어!? 이거 뭐지? 급하게 복원하느라 뒤집힌것도 몰랐나!?' 하는 생각했지만, 그건 말이 안되고..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찾아보니 다리 앞쪽에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광통교는 축조당시 신덕왕후 능을 이장하고 방치해 두었던 신장석을 다리 교대석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중 일부가 꺼꾸로 놓여있다. 이 신장석은 세..
1년쯤 전에 경복궁에 왔었다. 그 때 광화문, 흥례문이 일자로 통과하고 그 방향으로 바로보면 관악산이 있느데 관악산의 화기가 너무 강해 화기를 막기 위해 뭐를 하고 뭐를 하고..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바로 광화문으로 가서 앞뒤로 보니, 전혀 일자가 아닌걸? 이거 이상하네..하고 찾아봤더니 그 광화문도 복원된 것이었다. 처음 지어진 광화문은 임진왜란때 부숴지고,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재건할 때(원납전!)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도 6.25때 부숴지고 박정희 정권에서 다시 만들었는데 시멘트, 철근 구조물로 만들어서 요즘들어 제 위치에 다시 복원하고 있다. 경복궁 위치를 옮긴다길래 하노이탑을 움직이듯 하나씩 옮기나 했는데 퍼즐 뒷면에 번호 써놓고 다시 껴맞추는 식으로 옮기고 있었다. -_-; ..
내가 환구단을 알게된 것은 의경이던 때 였다. 어느 집회의 장소가 바로 이 '원구단'이었다. 원구단의 명칭은 원구단, 환구단 등으로 쓰이다가 2005년인가에 환구단으로 결정되었다. (한자를 어떻게 읽냐의 문제였는데, 독립신문에서 환구단으로 썼다고 해서 환구단으로 결정됐다고 한다.) 환구단은 고종 때 지어진 제천의식을 위한 제단으로, 고종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 후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 이전에는 어디서 제천의식을 했을까? 아, 찾아보니 또 서럽다.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것은 황제의 권한이라 하여 중국에서 못하게해서 조선 세조때 이후로 사라졌다고 한다. 후우. 고종 황제 때 자주의식을 발휘하여 환구단을 지어 직접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황제가 되었다. 그런데 또 우울하다. 이번엔 또 일본이 하늘에 제사를 ..
'서울 OOkm 남았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저렇게 써있는 안내판을 자주 보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서울이 서울의 어디를 말하는걸까? 서울의 남북이 30.3km, 동서가 36.78km란다. 부산에서 서울의 도봉동에 가냐 원지동에 가냐에 따라 30km의 차이가 생긴다! 어딜까? 궁금해서 주변의 운전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국회가 그 기준이라느니, 청와대라느니, 어느 다리의 남쪽 끝단이라느니 벼라별 의견이 다 있었지만 모두 틀렸다. 도로원표 표시비. 위 사진은 청계광장 바로 건너편의 조선일보 건물 앞이다. 저곳에 도로원표가 있다. 저곳에 가면 서울에서 각 도시까지의 거리를 알 수 있는데, 한국의 도시 뿐 아니라 런던, 뉴욕, 베를린 등의 외국 도시까지의 거리도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12..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가다가 예원학교를 끼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볼 수 있다. (난타 전용 극장 옆) 아관파천. 우리나라의 왕이 우리나라에 있는게 불안해 러시아 공관에 보호를 받으러가는 말도 안되는 사건. 국사시간에 한번쯤 들어본 그 이야기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다. 멀리서 봐도 상태가 개판인데 가까이서 보면 더 개판이다. 낡은 것 그대로 보존하는게 좋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이건 너무 심하잖아..벽에 금간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깨진 창문에...이대로 가다간 몇년 안에 보수공사를 한다며 새로 짓겠구만. 아무튼, 그 옆에 보면 건물이 있던 터가 있다. 당시 우리나라를 쥐고 있던게 일본이랑 러시아니까 이 건물도 꽤 컸겠지? 여기엔 영화나 소설서나 보던 비밀통로가 있다. (무슨 던전 입구같다.) 여기로 들어가면 ..
광화문 사거리에 위치한 이순신 장군 동상 저 자리에 처음부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던 것은 아니다. 전에는 세종대왕이 있었고 그 전에는 이승만이 있었다. 처음 만들어졌던 이승만 동상은 4.19 때 시민들에 의해 부숴졌고, 그 빈 자리에 세종대왕이 계셨다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보다 무!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세종대왕은 이순신 장군으로 교체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쿠테로 정권을 잡은걸 생각하면 이런 교체는 웃기지 않나? 장군에게 밀려난 왕..) 한때(2004년)는 세종로 보도 확충 공사를 위해 이순신 장군 동상을 이전하려는 계획도 세워졌었지만, 시민들의 항의로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이쯤 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얼마나 시민들에게 인기가 좋은지 얘기할 필요도 없겠지. 이 동상에 관한 미스테..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 웃긴건 유명한 데이트 코스인데 이 길의 끝까지 가면 헤어진다는 전설이 있다는 것-_-; 아르바이트하는 극장이 이 근처라 이 길을 한 네달 동안 일요일 빼고 매일 지나갔다. 처음에는 그냥 '여기가 거기구나' 했는데 다니다보니 이 길을 참 좋아하게 됐다. 우선, 명령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게 한다는 것이 좋다. 몇가지 살펴보면, 도로가 만들어지게 된 것은 빠르게, 편하게 가기위해서가 아닐까. 그럼에도 덕수궁 돌담길의 차도는 보행자를 생각해 차가 자연스럽게 서행을 하도록 차도를 굽이굽이 휘어지게 마들어 놨다. '''학교앞 천천히'''보다 훨씬 멋지지 않나? 게다가 보통 인도와 차도가 높이가 다르게 되어있으면 사람들이 차도로 내려가기를 꺼리게되고 차도와 인도가 같은 ..
너비 100m에 이르는 대빵 넓은 세종로. 쭉쭉 뻗어 올려다보려면 목이 아픈 건물들. 그 사이에 길을 잃은 어린아이같이 어색하게 놓여있는 비각이 있다. 지나다니면서 많이 봤지만 한번도 그 비각에 대해서 궁금한적이 없었다. 이름은 '칭경기념비각'이고 고종의 황제 즉위 40년을 기념해 세운 비석, 비각이라고 한다. 이 건물의 앞문은 일제시대 일본인이 뜯어가 대문으로 쓰다가 해방 후에 찾아와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아아..가슴아파. 고종 40년이면 우리나라가 한참 힘 없을 때 일텐데 즉위 40년 기념이라니..웃기다. 내가 이 건물을 보면서 재미있었던 건, 울타리에 12지신상이 있다는 것. 울타리가 있는 건물을 몇개 못봐서 그런지 12지신상이 신선했다. 그리고 그 12지신상이 귀엽게 생겼다. 뻐드렁니.. 귀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