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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에 위치한 이순신 장군 동상
저 자리에 처음부터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던 것은 아니다.
전에는 세종대왕이 있었고 그 전에는 이승만이 있었다.
처음 만들어졌던 이승만 동상은 4.19 때 시민들에 의해 부숴졌고,
그 빈 자리에 세종대왕이 계셨다가,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보다 무! 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세종대왕은 이순신 장군으로 교체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이 쿠테로 정권을 잡은걸 생각하면 이런 교체는 웃기지 않나? 장군에게 밀려난 왕..)
한때(2004년)는 세종로 보도 확충 공사를 위해 이순신 장군 동상을 이전하려는 계획도 세워졌었지만,
시민들의 항의로 그 계획이 무산되었다.
이쯤 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얼마나 시민들에게 인기가 좋은지 얘기할 필요도 없겠지.
이 동상에 관한 미스테리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칼을 오른손에 들고 있다는 것이다.
'칼을 뽑아든 상태에서야 오른손에 들고 있는게 자연스럽지만 칼집에 넣고 오른손이라니, 이순신 장군님이 왼손잡이였나?'
볼 때 마다 궁금해 하면서도 막상 집에 오면 잊어버렸는데, 오늘은 잊지 않고 그 이유를 찾았다.
김세중(동상을 만든이)기념사업회에서 운영하는 충무공동상 홈페이지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광화문의 충무공동상이 지닌 기념비적 상징성이 오해되어 이순신장군이 왼손잡이라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동상은 분명 이순신장군이 오른손잡이셨을 것을 전제로하여 제작되었읍니다. 충무공이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충무공의 역할과 의지가 그의 칼이 상징하는 실천적 힘과 조국수호에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기념비적 동상들의 자세에 있어서 두 손, 특히 오른손은 그 인물의 역할과 의지를 대변하는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곤 합니다. 이순신장군 동상은 가까이 적을 대면하여 마악 칼을 뽑으려는 동세의 형상을 지니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적을 물리친 역사적 승리자의 기념비로서 목숨을 바쳐 조국에 충성한 수호자적 인물의 상징적 자세와 모습을 지니도록 제작된 것입니다.아, 이렇게 간단하게 찾을 수 있는걸~ 진작 찾아볼껄!
사족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동상을 그 배경과 합쳐서 보면 동상이 칼을 왼손으로 들면 V자 모양이 된다. V자는 넘어질 것 같아 불안하다. 반대로 칼을 오른손에 들면 ^모양이 된다. 안정된다.
혹은 '공동경비구역 JSA'의 포스터를 보면 이병헌이 오른손을 들고 길을 막는다. 이순신 장군도 오른손을 들고 길을 막는다.(흡사 창을 들고 성문을 지키는 병사처럼.) 오른쪽에 뭐가 있길래? 청와대가 있다.
음...오번가? 하하~
그 외에도
- 갑옷이 너무 길다. (발목을 덮고 있어 전쟁시에 밟고 넘어진다)
- 칼이 일본꺼다.
- 갑옷은 중국꺼다.
- 패장이냐? 왜 고개를 숙이고있냐?
1,2,3번은 위에 인용한 내용으로 미루어 생각해보면 결국 고증보다는 그 상징에 중점을 두고 만들었고, 그래서 현실과는 맞지 않는 대답이 될 것 같고,
(그런데 갑옷 길이나, 칼, 갑옷의 모양에도 어떤 의미가 있나-_-;?)
4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유는 동상과 동상을 보는이의 관계를 생각한 모양이라고 한다.
세종로를 지나가는 차들을 내려보고 계신 이순신 장군님과 그 길을 지나가며 올려보는 우리.
쩝, 왠지 부끄럽네....
재미있게 보셨다면 추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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