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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라 한적하고 좋구나!

며칠 전에 청계천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습니다. 약간 일찍 나와 넋 놓고 청계천을 배회했습니다. 왔다갔다 하다가 광통교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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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게 보이나요? 네, 뒤집혀있습니다. 사진을 뒤집은게 아닙니다. 그 아래에 있는 교대석도 뒤집혀 있어서 '원래 무늬가 뒤집힌건가? 어떤 의미가 있는건가?' 하고 봤더니 옆에 몇개는 또 머리가 위쪽으로 향하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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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어!? 이거 뭐지? 급하게 복원하느라 뒤집힌것도 몰랐나!?' 하는 생각했지만, 그건 말이 안되고..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찾아보니 다리 앞쪽에 안내문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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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통교는 축조당시 신덕왕후 능을 이장하고 방치해 두었던 신장석을 다리 교대석으로 사용하였는데  그 중 일부가 꺼꾸로 놓여있다. 이 신장석은 세련된 당초문양과 구름문양이 새겨저 고려말 조선초기 전통문양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아름다운 문양석이 거꾸로 놓여있는 것은 조선초기 왕권장악에 있어 신덕왕후와 정적관계에 있던 태종 이방원의 의도적인 복수심의 산물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신덕왕후의 능침을 지켜야할 신장석이 600여년 가까이 묻혀있다가 청계천 복원공사로 인해 햇볕을 보게 된 것이다.

위의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조금 찾아봤습니다.
신덕왕후는 태조 이성계의 두번째 부인으로, 태조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신덕왕후의 빽으로 건국에 공이 없던 이방석이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그 유명한 왕자의 난. 후에 이방원은 권력을 잡고, 신덕왕후의 릉을 도성 밖으로 옮겼는데 이 때 석물들은 그대로 두고 이전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저런 석물들이 덩그러나 남아있게 되었고, 그것들은 1410년 광통교를 개축하면서 사용하였습니다.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었을텐데 구지 릉에 있던 돌을 가져와 사용한 이유는, 이방원의 신덕왕후에 대한 분노에 있겠지요. 사람들이 밟고다니는 다리를 릉의 돌로 만들다니..하하. 태종이 승자의 아량을 베풀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사실 안내문도 있고 해서 가보신 분들은 대부분 아실 것 같지만..저는 여러번이나 갔음에도 항상 물만 보고 다녀 이제야 발견했네요. 항상 느끼지만 서울은 어디를 가도 볼 게 많은데 관심이 부족해서 모르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보면 주변에 교과서에서 봤던 얘기들, TV에서 봤던 얘기들과 관련된 것들이 널려있으니..
서울이 이래서 좋아요!

앞으로 광통교를 가면 태종의 소심한 복수가 생각나 피식~ 하고 웃게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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